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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노선을 연찬한다(김대호)- 펀글


손학규 노선을 연찬한다 (1)

(사회디자인연구소 / 김대호 / 2010-10-22)


 

 

 
단상을 높이고 키를 키우자

민주당 대표 손학규는 진보개혁 진영에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국정 깽판 질을 2012년에 종식시킬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당 안에도, 진보개혁 진영 안에도 손 대표의 낙마나 추락을 은근히 기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딱히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기에 손학규  대표가 진보개혁 동네의 유력한, 더 나아가 유일한 희망으로 커줬으면 한다. 그러나 2007~8년 그가 대권 주자로서, 또 통합민주당 대표로서 보여준 시원치 않은 실력과 2010년에 보여준 그저 그런 실력을 종합해 보면 손 대표의 개인기도, 그가 올라탈 진보개혁 진영의 집단기도 거의 환골탈태 수준으로 버전 업(version up) 돼야 겨우 승리를 넘볼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2010년 손학규 대표의 철학, 가치, 비전, 정책, 심리의 상당 부분은 지난 8월15일자 발표한 그의 장문(200자 원고지로 117매)의 출사표;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춘천을 떠나며―“에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다.

손 대표가 자신의 젖 먹던 내공까지 동원해서,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며 직접 쓴 것이 분명한 이 글은 진보개혁 진영과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명운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문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 측에서도 보수 측에서도 이 중요한 문건을 찬찬히 연찬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나도 연찬(硏鑽)이라는 말을 처음 쓰는데, 사전적 뜻은 학문 따위를 깊이 연구한다고 한다는 뜻이란다)

나는 지난 8월 12일 정동영 의원의 반성문(☞ http://v.daum.net/link/8689288) “저는 많이 부족한 대통령 후보 였습니다”(2010.8.8)를 연찬한 적이 있다. 여기에 대해 정동영 의원이 답글을 보내와서 좀 더 깊이 연찬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손 대표의 출사표를 깊이 연찬하는 기회를 놓쳐버렸다. 게다가 이제는 사회디자인연구소도 운동이나 사업으로 연결되지 않는 단순 계몽성 비평에 식상하여 손학규 비평을 꺼리게 된 측면도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문제가 여간 심각하지 않은 손 대표의 출사표를 비평하는 사람이 없어서 뒤늦게나마 우리 연구소가 하게 되었다. 이것이 허접한 글을 써 놓고도 지적 자부심이 넘치는 손 대표와 진보개혁진영의 정치적 키(내공과 신뢰와 매력)를 0.1mm라도 키우는데 기여 하지 않을까 해서다. 나는 손학규를 비롯한 진보개혁 진영의 그 어떤 주자도 반한나라당 성향의 국민들이 학수고대하는 (김대중, 노무현 같은) 정치적 거인이 아니기에, 진보개혁 진영이 높다란 국민적 신뢰의 단상을 만들어, 그 위에 진보개혁 진영 전체의 1등 주자를 올려놓아야 겨우 한나라당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은 본래 우리 보다 단상이 높은데다가 그 유력 주자들의 키도 진보개혁 진영 보다 결코 작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이 글;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춘천을 떠나며―“는 모두 4개의 장(성찰-과제-비전-결의)으로 되어 있다.

1. 성찰 : 역사의 퇴행, 그리고 정치역정의 반성
   양극화된 국민의 삶 / 정치적 성찰 / 민주주의의 후퇴

2. 과제 : 진보의 가치와 공동체
   진보적 자유주의와 시대의 변화 / 문명사적 변화와 공동체의 가치 / 진보의 가치

3. 비전 :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 공동체
   국민생활우선의 정치 / 정의로운 복지사회 / 건전한 시장경제질서
   한반도 평화와 한민족 공동체 / 민주당과 민주진보세력 / 세종대왕 리더십

4. 결의 :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화합’과 ‘품격’의 정치 / 새로운 다짐


지적 나태? 통찰력 빈곤?

손 대표가 “성찰”에서 다루는 핵심 내용은 “양극화와 민주주의 후퇴”로 집약되는 “역사의 퇴행”과 “정치역정의 반성”이다. 자신의 정치역정에 대한 반성은 “정치적 성찰”이라는 소제목 하에 서술했는데, 그 요지는 “민주화운동을 위해 변함없는 신념을 가지고 일생의 가장 큰 부분을 바쳤던” 사람으로서 “한나라당 탈당은 숙명”이었으며,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 과거의 권위주의적 행태가 되살아나고 억압적 정치로 회귀하는 최악의 퇴행을 목도”하면서 “찬란한 젊음을 민주주의에 바쳤던” 사람이 “진정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을 절감하고 감사”한다는 것이다.

나는 손 대표의 정치적 성찰과 고백에 대해 조금도 이의가 없다. 공감한다. 행여 아직도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이유로 손 대표가 민주당 대표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스스로 소중화를 자처하면서 만동묘를 만들어 오래 전에 망해 없어진 명나라(신종)를 섬기던 조선 노론계 선비들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손학규를 당 대표로 만든 민주당 당원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정작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핵심적인 모순.부조리에 대한 손 대표의 진단이 정동영 및 한국 좌파들의 그것과 별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승자독식경제, 양극화, 분열, 계층 상승 희망부재, 사람보다 돈이 우선인 사회 등이 외환위기를 계기로 맹위를 떨친 신자유주의에서 찾는다는 것이다. 손학규는 이렇게 말한다.

“정치에 대한 저의 성찰은 국민들의 고단한 삶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어느덧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승자독식의 경제, 그리고 그것과 함께 나타난 양극화 현상이었습니다. 국민의 삶이 피폐해 지고 사회는 분열되어 갔습니다. 지금 우리 국민은 아무도 내일에 대한 희망을 말하지 않습니다.(중략) 정치는 그동안 민생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중략) 사람보다 돈이 우선한 사회, 사람보다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중략) 대한민국은 지금 “분열”이라는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부자와 서민, 강남과 강북,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촌.......이 거대한 균열은 우리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지키는 소중한 가치들이 붕괴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심화되어 온 이 양극화가 국민의 삶을 파괴하고, 대한민국 공동체를 분열시켜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습니다.(중략) 민주세력이 이와 같은 전 방위적 파괴상황에 안일하게 대응하면서 방심하고 분열하는 동안 국민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습니다. 저 자신 역시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흐름 속에서 선진화 담론에만 도취되어 양극화가 우리 사회전체를 분열시키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승자독식 경제, 양극화, 삶의 피폐, 사회 분열, 희망부재, 공동체 가치의 붕괴의 원인을 외환 위기 이후 맹위를 떨쳤다는 신자유주의(혹은 이를 방치 조장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게서 찾는 것은, 1987년 이후 발호했다는 친북좌파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 것만큼이나 단견이다. 일면적인 진단이자, 사실과 다른 진단이다.

손학규가 애달파 하는 국민들의 고단한 삶은 기본적으로 공공(정치, 행정, 사법, 언론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 보니, 대부분의 힘 있는 존재(이익 집단)들이 마치 화전민처럼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익을 추구하여, 힘없는 미래세대, 청년세대와 전후방 가치생산 사슬이 가져가야 할 몫을 너무 많이 빨아가서 가치생산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결과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힘 있는 이익집단이 똬리를 틀고 있는 영역에서는 과도한 정치, 경제적 지대(자리세, 불로소득)가 존재하고, 3비층, 영세자영업자, 시간강사 등으로 상징되는 힘없는 존재들이 사는 곳에는 우리의 생산력 수준에 비해 너무 허술한 사회안전망에 보호(?)되면서 (외국인 단순 노동까지 가세한) 무한경쟁의 파도가 밀어닥치고 있다. 다시 말해 세계화, 지식정보화, 자유화, 중국의 부상, 재벌대기업의 경제사회적 헤게모니 등에 힘입어 (보수가 선호하는) 과잉시장이 나타난다. 반대로 발전국가의 유산, 관료 마피아의 힘, 대기업, 공기업 중심 노동 운동의 강세 등에 힘입어 (진보가 선호하는) 과소시장이 나타난다. 물론 두 곳 다 몰염치와 무원칙, 불공정과 불공평이 도도히 흐르긴 마찬가지다.

요컨대 1997년 이후에도 OECD 국가 중에서 거의 최고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삶이 유난히 고단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복지 결핍 때문만은 아니다. 수출과 내수 간에, 첨단산업과 전통산업 간의 연계성 저하에 기인한 Trickle Down Effect(낙수 효과? 아랫목 효과?)의 약화 때문만도 아니다. 가장 주된 요인은 조선후기 양반과 노비에 비견될 만큼, 성 안과 밖의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불공평(격차) 때문이다. 지금 한국민들이 선망하는 대부분의 직업, 직장은 경쟁제한 장벽도 높고 독과점도 가능하여, 우리의 생산력 수준에 비해 너무 높은 권리, 이익, 혜택을 누린다. 국정감사 때 여야로부터 항상 동네 북이 되지만 끄떡없는 “신의 직장”(한국거래소, 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 등)은 빙산의 일각이다.

지금 한국은 성안은 너무 따뜻하여 망사 팬티도 덥게 느껴질 정도고, 성 밖은 북풍한설에 낡은 삼베옷만 걸치고 오들오들 떨면서 사는 형국인 것이다. 상하 낙차가 큰 지형에서 흐르는 물이 폭포가 되거나 격류가 되듯이, 불공평이 극심한 데서는 너무 따뜻한 지대의 성채로 진입하려는 경쟁(양반되기 경쟁)이 격렬할 수밖에 없다.

정말 한국의 3비층 등 사회적 약자들은 자산, 소득, 기회의 빈곤에 울고, 고용임금의 불안정에 울고, 희망 사다리의 단절에 울고, (소득, 기회, 배려 등) 총체적 불공평에 울고, 암울한 미래에 운다. 일종의 거열의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외환위기를 계기로 맹위를 떨쳤다는 신자유주의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는 손학규-정동영-좌파의 공통 논리는 보편적 복지 정책 위주의 대안을 내올 수밖에 없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과잉 시장에 대한 “대충 대충 땜빵” 논리이다. 극히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1차 분배구조(생산 과정의 문제)는 놔두고, 대부분의 정치적 에너지를  2차 분배 구조 개선에 집중하겠다는 논리이다. 오염제거 작업에 비유하면 상류의 오염원은 놔두고, 중하류에서 오염물질을 제거하겠다고 난리법석을 떠는 논리인 것이다. 현실성도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얘기다.

한편 자신의 정치 성향에 어울리지 않게, 좌파적 당파성에 충실한 손학규의 논리는 외환위기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김영삼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뒷수습을 잘못하여(?) 신자유주의(?)를 팽배하게 만들었다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한꺼번에 몰아서 탄핵하는 논리이다. 또한 은연중에 1997년 이전 시대 즉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대를 무슨 요순시대처럼 떠올리게 하는 논리이다.

그런 점에서 손학규는 출사표에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을 정치적 조상으로 둔 자신과 진보개혁 세력을 폄하하고, 박정희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박근혜와 한나라당을 띄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전-노 시대야 말로 그 이후 시대 보다 훨씬 더 “사람보다 돈이 우선한 사회, 사람보다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자, 부동산 불로소득이 창궐하는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신자유주의-고용불안-양극화-2008년 금융위기-신자유주의 종언 등을 얽기 설기 조합하여 한국 사회를 진단하고 전망하는 논리는 원래 민주당(김대중, 노무현)이나 한나라당이나 “그게 그거다”(몽땅 신자유주의 세력)라고 강변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좌파의 논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손학규와 민주당에까지 깊숙이 침투한 것은 기본적으로 지적 나태 아니면 통찰력의 빈곤 탓 아니겠는가?  (계속)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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